佛 루브르 왕의 심장으로 그린 그림이?

18세기 혁명정부 명령 루이14세 등 무덤 파헤쳐 물감 재료로 사용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19세기 그림 중 일부 작품에 프랑스 왕과 왕비의 신체 일부가 녹아들어 있다고 프랑스 언론이 보도했다. '엽기 그림'에 관한 괴담이 아니다. 프랑스의 대표적 미술전문지(誌) 보자르가 정색을 하고 취재한 결과다.

보자르 8월호는 '예술계의 믿기 힘든 30대 불가사의'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에서 루이 14세의 심장과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루이 16세의 부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오스트리아의 여왕)의 심장이 19세기 프랑스 화가 생 마르탱(Saint-Martin)과 마르탱 드뢸링(martin dro"lling)의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고 보도했다.

보자르는 프랑스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비밀문서(분류번호 03-623) 내용을 토대로 이같이 주장했다.

사연은 이렇다.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던 해인 1793년 혁명정부는 건축가 프티 하델에게 루이 13세, 루이 14세, 역대 왕자와 공주의 심장 등 모두 45개를 흩뿌려 없애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들의 심장은 혁명기에 약탈을 일삼던 일단의 민중들이 성당 내 왕족 무덤까지 파헤치는 과정에서 수습된 것들로 추정된다.

하델은 심장을 흩뿌려 없애지 않고 화가인 친구 생 마르탱와 마르탱 드뢸링에게 '미라'로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은 왕들의 심장을 갈아 기름과 함께 안료를 섞어 글라시(glacis)를 위한 왁스로 만든다. 글라시는 밑그림이 마른 뒤 투명물감을 덧칠하는 회화 기법으로 그림의 윤기와 깊이감을 더해주는 효과가 있어 당시 화가들이 널리 활용했다고 한다.

생 마르탱은 루이 14세의 심장을 재료로 한 왁스를 조금 사용하다 말았지만, 드뢸링은 달랐다. 그는 루이 14세의 어머니 안느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오를레앙의 필립공 등 12개의 심장을 몽땅 갈아 물감 재료로 썼다고 한다.

보자르는 "드뢸링의 대표작(1815년) '부엌 풍경'(사진) 같은 작품에는 프랑스 왕, 왕비의 심장이 응결되어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by goodki01 | 2010/11/20 11:23 | 트랙백 | 덧글(0)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74] 이젠하임 제단화

김영나 서울대교수·서양미술사 
 

기독교 미술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구세주가 인간으로 태어나 받은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하는 테마일 것이다. 그 중 어느 작품도 독일의 르네상스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가 그린 '이젠하임 제단화'(사진·1510~1515년)만큼 충격적인 것은 없다.

어둡고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나무를 마구 잘라 만든 거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가시관을 쓰고 고통에 못 이겨 뒤틀린 자세로 매달려 있다. 몸은 이미 무겁게 늘어져 십자가의 양쪽이 휘어져 있으며, 입은 열려 있고, 못이 박힌 손가락은 갈라져 위로 향해 뻗치고 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쓰러지는 마리아를 부축하는 애제자 요한과 심하게 몸이 휘어지면서 강렬한 슬픔을 나타내는 막달라 마리아가 기도하는 자세로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성배에 피를 흘리고 있는 양과 세례 요한이 있는데 그의 손가락은 "그는 더 커지고 나는 더 작아진다"는 라틴어로 쓴 글귀를 가리키고 있다.

이렇게 격심한 고통을 보여주는 십자가 상을 의뢰한 곳은 독일의 이젠하임에 있는 성 안토니 수도원의 병원이었다. 이곳에는 주로 피부가 썩는 병을 앓는 환자들, 예를 들면 괴저병·한센병 환자들, 또 1490년대부터 유럽에 많이 퍼지기 시작한 매독 환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림에서 이미 초록색으로 변색하기 시작한 그리스도의 피부는 괴저병 증상과도 흡사해 보인다.

당시에는 병이 심한 환자들은 팔이나 다리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는데, 환자들이 처음 치료를 받을 때 이 그림이 있는 방으로 데려가 쾌유를 빌게 했다고 한다. 환자들은 극한의 고통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정신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여러 그림이 겹쳐진 이 제단화 중앙 부분을 열면, 그 안쪽에는 밖의 음울한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밝은 분위기의 예수 탄생과 부활의 장면이 나타난다. 환자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약속하는 의도로 그려진 것임을 알 수 있다.

by goodki01 | 2010/10/09 01:51 | 이것저것 기웃기웃 | 트랙백 | 덧글(0)

살빼는 소프라노… 목소리는 안줄어들까

살빼는 소프라노… 목소리는 안줄어들까
오페라 가수도 열심히 다이어트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미국의 소프라노 데보라 보이트(Voigt)가 2년 여 만에 45㎏ 가까이 감량을 하고 무대로 복귀했습니다. 정확한 몸무게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성악가 스스로 "옷 사이즈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한 것으로 미뤄서, 위 절제 수술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보입니다.

20세기 최고의 디바(diva) 마리아 칼라스(Callas)도 영화 배우 오드리 헵번을 벤치마킹(bench-marking)하기 위해 30㎏ 가까이 감량한 적이 있으니, 성악가의 다이어트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체중 감량에는 다소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보이트는 지난 2004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서 아리아드네 역으로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출연 예정이었습니다.
▲ 소프라노 데보라 보이트가 체중 감량을 하기 전의 모습(왼쪽)과 45㎏ 가량 감량을 한 뒤 지난 1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노래하는 모습. 데보라 보이트 홈페이지(www.deborahvoigt.com)
1991년 보스턴에서 이 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하며 성악가로서 본격적인 경력을 쌓았기에 보이트 자신에게도 무척 소중한 배역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연출가 크리스토프 로이(Loy)는 '검정 칵테일 드레스가 보이트에게 맞지 않는다'며 배역 교체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보이트는 인터뷰에서 "내가 평생 뚱뚱했다는 걸 생각하면 무척 아이러니컬한 일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결국 보이트는 "오페라 극장 문제가 아니라 내 무릎이 아팠기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숨이 찼고,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내 몸이 의자에 맞을지 걱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첫 달에만 10㎏ 가까이 줄인 그는 체중 감량에 성공한 뒤 활발하게 활동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다이어트 사건은 고고하고 도도하게 보이던 클래식 음악계에도 한치 빈틈 없이 시장 논리가 적용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90년대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Gheorghiu)에 이어 2000년대의 안나 네트렙코(Netrebko)까지 노래는 물론, 젊고 예쁘고 연기력까지 뛰어나야 인정 받는 세상이 온 것입니다. 네트렙코는 아예 마릴린 먼로를 연상시키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수영장에서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 가운데 아리아 〈달의 노래〉를 뮤직 비디오로 촬영해 화제를 뿌렸지요. 콧대 높기만 하던 오페라도 날이 갈수록 '오디오'에서 '비디오'로 그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체중 감량 이전에도 보이트는 풍부하면서도 선 굵은 목소리로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독일 오페라에서 정평이 나있던 정상급 드라마틱 소프라노입니다. 최근 같은 배역으로 같은 극장에 복귀하게 됐으니, 결과적으로는 '무승부'인 셈입니다. 하지만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사는' 것이 오페라의 매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씁쓸하기 그지 없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by goodki01 | 2008/12/17 22:46 | 이것저것 기웃기웃 | 트랙백 | 덧글(24)

베토벤 '10번 교향곡' 있나? 없나?

제자 "죽기전에 스케치 남겼다" 주장
학자들 "초고에는 이르지 못해" 반박
'9번 교향곡'은 일종의 징크스로 남아
▲ 2003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213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41억원)에 낙찰된 9번 교향곡 악보 초고. / 블룸버그
'10번 교향곡'은 스페인의 소설가 조셉 젤리네크가 악성(樂聖) 베토벤의 삶을 팩션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음악학 교수 다니엘은 베토벤이 10번 교향곡을 남겼으리라 믿고 은폐된 악보를 찾아 나선다.
베토벤(Beethoven·1770~1827)의 공식적인 마지막 교향곡은 9번 '합창'이다. 그렇다면 베토벤의 미완성 교향곡 10번은 존재할까. 소설은 명쾌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 명료하지 않다.

베토벤이 사망 직전 쓴 편지에 "내 책상에 이미 스케치된 것이 있으니 그것들로 새 교향곡 하나, 혹은 서곡이나 협회가 좋아할 만한 다른 작품을 쓸 수 있도록 해주기"를 간청하는 구절이 있다. 1825년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포켓용 스케치북에도 교향곡 10번의 악상을 담은 스케치가 있다.

'10번 교향곡' 논쟁의 불씨를 마련한 주인공은 베토벤의 조수이자 제자로 유명한 안톤 신들러(Schindler ·1795~1864)다. 그가 쓴 스승의 전기는 수없이 번역되고 개정판을 거듭하면서 19세기 베토벤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는 베토벤이 타계한 뒤 스승의 집에서 중요한 자료들을 가져가 1845년 프로이센 왕에게 팔고 거액을 챙긴 것으로 악명이 높다. 신들러는 베토벤의 대화첩에서 자신이 등장하는 대목을 조작하거나 위조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어쨌든 신들러는 1844년 베토벤이 사망 전 10번 교향곡을 위한 스케치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베토벤의 동료이자 또 다른 조수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카를 홀츠(Holz)도 '미완성 10번 교향곡'에 대해 "베토벤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고 부드러운 도입부에 이어 힘찬 알레그로로 이어진다"고 말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악성 베토벤이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감안하면 10번 교향곡의 여부는 저명 인사의 '친자 확인 소송'처럼 민감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1970~80년대에 들어서야 학문적 수준에서 본격적 재조명이 이뤄졌다.

논쟁의 불씨를 되살린 학자는 베토벤 연구가이며 음악학자인 배리 쿠퍼(Cooper)다. 그는 베토벤이 남긴 스케치 등을 바탕으로 "1824년 '합창' 교향곡을 완성하기 전인 1822년부터 교향곡 10번을 위한 구상에 들어갔고 사망하기 2년 전인 1825년 10월에 마지막 스케치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쿠퍼는 자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베토벤이 남긴 스케치에서 추려내서 5년간 재구성 작업 끝에 1988년 '10번 교향곡'의 1악장을 두 가지 버전으로 발표했다. 쿠퍼가 손댄 베토벤의 '미완성 10번 교향곡'은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각각 녹음했다.

반면 로버트 윈터스 같은 학자들은 "베토벤이 9번 교향곡을 완성한 뒤 실제 10번 교향곡에 착수했다고 해도, 연속성 있는 초고(草稿)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반박하고 있다.
서양 음악사에서 작곡가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은 적지 않다. 바흐의 '푸가의 기법', 모차르트의 '레퀴엠', 푸치니의 '투란도트', 알반 베르크의 '룰루' 등이 대표적이다. 모차르트와 푸치니의 작품은 제자들이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토벤 이후 서양 음악사에서 '9번 교향곡'은 일종의 징크스가 됐다. 슈베르트, 드보르자크, 말러, 브루크너 같은 작곡가들이 교향곡 9번을 넘기지 못하고 타계한 것이다.

말러의 경우에도 미완성 유고를 바탕으로 '10번 교향곡'을 완성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특히 말러의 교향곡 10번은 크셰넥을 비롯해 데릴 쿡, 카펜터, 마제티 등 여러 작곡가들이 완성에 도전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Rattle)은 말러 교향곡 10번의 완성본에 누구보다 애착을 지니고 연주하고 있다.

by goodki01 | 2008/12/15 22:38 | 이것저것 기웃기웃 | 트랙백 | 덧글(1)

탄호이저

현실과 이상 사이… 방황하는 영혼을 위해
여인의 희생으로 구원받는 음유시인
序曲·순례자의 합창… 귀에 익은 명곡 즐비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두 세상 사이에서 방황하기 마련이다. 이상(理想)은 드높지만 현실은 미약하며, 영혼은 고결하지만 육신은 비루한 욕망을 추구한다. 인간사의 근본적인 딜레마일 것이다.

이렇게 두 세계에서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도 처절하게 그려낸 오페라가 바로 바그너의 명작 '탄호이저'다.

이 오페라의 메시지는 장중하지만, 그 내용은 바그너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대부분의 바그너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여성의 희생에 의한 남성의 구원'이라는 주제는 진부할 것 같지만, 막상 극을 접하고 보면 그 웅변은 의외로 강렬하고 감동적이다. 음악은 아름다운 한편, 이미지가 뚜렷하다. 이 오페라의 배경은 대조적인 두 세계이다. 하나는 순결과 순정(純情)의 세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환락과 육욕(肉慾)의 세계다. 그리고 각각 한 명씩의 여성이 두 세계를 대표하는데, 이름은 각각 엘리자베트와 베누스(비너스)다.

▲ 독일 음악 페스티벌에서 무대에 오른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의 한 장면. /Getty Images 멀티비츠

그래서 두 여인의 역을 맡은 소프라노는 경쟁하듯이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보여주게 되는데, 이 점이 이 오페라의 큰 매력이다. 바그너가 대조하려고 했던 두 세계가 각각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회를 상징한다고 보는 학자가 있는 반면, 융성하였지만 부패한 프랑스와 가난하지만 정신성이 살아있는 독일로 본 견해도 있었다. 두 세계는 또한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가진 자와 없는 자, 지배층과 피지배층, 또한 노(勞)와 사(使)가 될 수도 있다. 또 유럽과 제3세계, 보수파와 개혁파, 현실과 이상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주인공 탄호이저는 두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데, 그것은 바그너의 모습이자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중세 독일의 기사이자 음유시인인 탄호이저는 튀링겐 지방 영주의 조카딸인 엘리자베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베누스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베누스와 꿈같은 환락의 시간을 보낸다. 탄호이저는 자신의 원래 세계로 돌아오지만, 음유시인(吟遊詩人)들이 모여서 시와 노래를 겨루는 경연(競演)대회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기가 맛보았던 육욕의 세계를 찬미하고 만다. 이에 사람들은 탄호이저가 금단(禁斷)의 세계에 갔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큰 벌을 받게 된다. 사면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황의 용서를 받는 일인데, 교황조차 그를 외면한다.

하지만 탄호이저의 영혼은 결국 구원을 받는데, 그것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엘리자베트의 희생, 즉 그녀의 죽음에 의해서이다.

이 오페라의 내용보다도 더 큰 매력은 음악이다. 무척 유명한 서곡(序曲)을 시작으로 시종 바그너의 유려한 관현악이 듣는 이를 감동의 세계로 이끈다. 서곡 외에도 '베누스베르크 음악'과 '바카날레' 그리고 '입당행진곡' 등의 관현악곡이 잘 알려져 있다. 아리아 중에서도 엘리자베트의 '노래의 전당이여'와 '엘리자베트의 기도', 탄호이저가 부르는 '베누스 찬가'와 '로마 이야기', 친구 볼프람이 부르는 '저녁별의 노래', 그리고 유명한 합창곡인 '순례자의 합창' 등 명곡이 즐비하다.



추천 음반

CD=솔티 판 (1970년, 데카)

르네 콜로(탄호이저), 헬가 데르네쉬(엘리자베트), 크리스타 루드비히(베누스), 빅터 브라운(볼프람) /지휘: 게오르그 솔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악우협회 합창단

추천 이유: 최고의 탄호이저 음반의 하나로서 콜로와 루드비히의 가창이 대단하다. 빈 필의 연주력과 전성기 데카 기술진의 테크닉이 한데 어울려 최고의 음향을 만들어 냈다.

DVD=바이에른 판 (1994년) 뮌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 실황

르네 콜로(탄호이저), 나딘 세쿤드(엘리자베트), 발트라우트 마이어(베누스), 베른트 바이클(볼프람) /지휘: 주빈 메타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합창단 /연출: 데이비드 올든 /무대: 로니 토렌

추천 이유: 올든의 연출은 뮌헨의 대형 무대에서 뛰어난 시각 효과를 보이는데, 서곡 부분에서 극의 상징적 장면들을 모두 보여주면서 관객을 압도한다. 두 여주인공은 각각 청순하고 요염한 모습을 성공적으로 표현해 낸다.

by goodki01 | 2008/12/08 21:46 | 이것저것 기웃기웃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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